잿빛 도시에 작은 불을 밝히는 이야기 -『서울 아이』박영란 작가

‘기다림’과 ‘환대’라는 삶의 비밀을 마주한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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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이 이야기를 처음 구상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하나의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정신력이 필요해요. 몰입해서 그 이야기의 핵심이 될 무언가를 건져 올려야 해요. 그래야 시작할 수 있어요. 저는 이야기를 시작할 때 인물의 감정에 집중해 왔어요. 인물의 분노, 욕망, 기대, 그리움, 같은 거요. 인물이 마음에 품고 있는 핵심적인 감정을 찾아야만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어요. (요즘은 사건에 집중하는 게 흥미롭고요.)

『서울 아이』는 오래 계획한 이야기였어요. 사회적 열풍에 휩쓸려 신도시로 이주한 중산층 가정이 붕괴하면서 고통받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이야기로 써지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희망이’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인물이 자기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다가왔어요. ‘서울 아이’를 쓰는 동안 소설을 쓴다기보다 아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받아 적는 기분이었어요.

Q2. 개정판이 나오면서 『서울역』이 『서울 아이』가 되었는데 그 의미는 무엇인가요?

알맞은 제목을 찾은 게 큰 의미 같아요. ‘서울 아이’라는 제목이 참 좋아요. 처음부터 이 제목이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새 소설을 출간할 때면 늘 생각해요. ‘알맞은 제목일까? 부담스럽거나 설익은 제목은 아닐까?’ 착 어울리는, 그래서 그 소설의 영혼 같은 제목이 있어요. 제 소설 중에는 『쉿 고요히』와 『편의점 가는 기분』이 그랬어요. (물론 출판사와 작가의 생각은 다를 수 있어요.)

그리고 『서울 아이』가 그래요. 이제라도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아 마음이 놓여요.

Q3. 『서울 아이』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장면은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연대’와 ‘환대’의 순간들이었습니다. 이를테면 희망이가 버드와의 첫 만남에서 서로 눈을 깜빡여 주던 장면이나, 진우가 아이언맨을 찾아 집을 비운 사이 진우의 친구들이 희망이에게 생활비를 건네는 장면 등이요.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희망’이란 이런 모습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소설 속에 이런 말이 나와요. “한 사람의 인생은 세상 책임 반, 자기 책임 반이야.” 귀차니 아줌마가 한 말인데요.

『서울 아이』의 희망이와 진우는 방치된 아이들이에요. 우리 사회가 약자들을 방치하고 심지어 버리고 내몬다는 걸 드러내고 싶어서 이 아이들을 등장시키게 되었어요. 저는 이런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드러내서 사회가 책임져야 할 절반의 몫을 상기시키고 싶어요.

나머지 절반은 개인의 책임인데요. 우리는 주변의 친절에만 의지해 살아갈 수는 없어요. 그래서도 안 되고요. 하지만 어떤 사람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는 주변의 친절이 꼭 필요해요. 그래서 조용히 작은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이 너무 소중해요. 저는 그들 속에 희망이 있다고 봐요.

책상 앞에 붙여 둔 두 개의 문장이 있어요. 이 두 문장 사이에 우리가 있고, 그 사이에 희망이 있다는 걸 잊지 않으려 해요.

 

‘우리 모두는 생각보다 별로다.’
‘우리 모두는 생각보다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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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돌아가신 조부모님께 유산으로 받은 이층집(『나로 만든 집』), 힘겹게 살아가는 도시 변두리 사람들이 찾는 야간의 편의점(『편의점 가는 기분』), 금괴와 총이 든 짐을 놓고 간 숙박객이 머물렀던 고모의 게스트하우스(『게스트하우스 Q』) 등 하나의 장소를 들여다보고 그 안의 특별함을 발견하는 소설로 큰 사랑을 받고 계시는데요.

『서울 아이』에서는 ‘서울’이 그 장소입니다. 작가님께 서울이라는 장소의 의미가 남달랐는지, 서울이 이 소설의 시작과 관련이 있었을지 궁금합니다. 더불어 ‘공간의 작가’라는 수식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도요.

한국인이 생각하는 ‘서울’과 외국인이 생각하는 ‘서울’은 좀 다른 것 같았어요. 제가 만나 본 다른 나라 사람들한테 ‘서울’은 어떤 기대를 품게 하는 도시였어요. 서울에 ‘희망’이 있는 거지요. 각자 품은 희망은 다르겠지만요.

제 인생에는 크게 보면 두 개의 확연히 다른 시공간이 있어요. 돌아가고 싶고, 그리운 사람이 있고, 풍성한 자연이 있는 시공간과 도망치고 싶고, 마음을 닫게 만든 사람들과 성장기를 보낸 시공간. 그중에 서울은 후자였어요.

‘공간의 작가’라는 수식어가 저한테 주어졌다면 아마도 제 글을 읽은 분들이 어떤 예민한 지점을 포착하시는 것 같은데요. 그건 저의 정신이 공간을 통해 발현되기 때문일 거예요. 도망치고 싶은 거대한 도시에서 어떻게든 마음을 붙일 공간을 찾아내 그곳에 작은 등을 밝히는 심정으로 글을 쓴다는 걸 알아내신 것도 같고요. 불을 밝히는 건 그곳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이지만요.

 

​ 인터뷰 전문 - 링크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