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질문에 대한 호통판사의 응답 -『내가 만난 소년에 대하여』천종호 판사

『내가 만난 소년에 대하여』출간 기념 이벤트로 진행되었던

<호통판사 천종호에게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선정된 다섯 질문에 대한 천종호 판사의 답변을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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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N번방 사건 범죄주동자들 같은 사람들 중 10대도 있어요. 그 사람이나 인천 중학생 추락사건 가해자가 피해학생 옷을 입고 나간(정확히 서열1위가 4위에게 입으라했다는 말도) 심리 상태나 고등학생이 8세 아이 집으로 유인 살해하기도 하는 등 잔혹한 행위를 하는 이런 청소년도 호통하고 법정에 선다고 달라질까요? 너무 어두운 말만 하죠.. 교사이다 보니 아이들 중 가끔 장래가 걱정되는 아이가 있거든요.

 

제가 오로지 호통만으로 아이들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으로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아주 큰 오해입니다. 호통 한번으로 변화된다면 아마도 모든 판사님들이 소년들에게 호통을 칠 것입니다. 하지만 호통하나가 인간을 변화시키지 못하지요. 제가 호통을 치는 이유는 그들이 자신들의 비행이나 범죄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경각심을 가지게 하기 위함입니다.

법정에 오는 아이들 중 자신들의 비행에 관해 심각한 반성이 없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법정까지 왔는데도 그러한 태도를 고치지 못한다면 다시 비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호통만으로는 안 되겠지만, 호통이라도 쳐서 새로운 피해자가 발생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에 호통을 칩니다.

 

저도 선생님께 여쭈어보겠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왜 야단을 치시는가요? 변화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어도 그 아이들이 변화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야단치지 않나요? 변화가능성이 없다고 생각되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야단조차 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는 않으시지요?

제가 호통을 쳤던 아이들은 주로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이었고, 우려와 달리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은 당연히 그에 합당한 무거운 처벌을 받습니다. 다만 사회의 불평등과 부조리가 아직 미숙한 십 대들의 일탈을 부추겨 그 죄질이 더 잔혹해졌다는 점을 고려해야겠지요. 무엇보다 아직 남은 생이 길고, 사필귀정의 엄중함을 미처 모르는 아이들이기에 엄한 처벌과 더불어 충분히 반성하고 바꿀 기회와 시간, 프로그램을 함께 내어주는 것이 이 냉혹한 사회를 만든 어른들의 몫일 것입니다. 

 

 

2. 학폭 이후 피해학생은 꽤 긴 시간 치료와 상담을 받아요. 반대로 가해학생과 부모에 대한 교육은 넘 짧은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어요. 가해학생과 부모 또한 교육과 더불어 치료와 상담이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그런 아쉬움이 들 때가 있어요. 판사님 생각으로 현재 학폭 이후 가해학생에 대한 단기간의 교육이 효과가 있다고 보시나요? 가해학생과 그 부모에 대해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학교폭력에 대한 피해자의 회복을 위한 조치와 가해자의 처벌은 서로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특히, 피해회복시간과 처벌을 위한 교육시간을 같은 평면 위에 놓고 비교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제가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가해자들의 교육시간이 짧다고 해서 피해자들의 치유를 위한 시간을 짧게 하자고 하실 수 있으신가요? 아마도 못할 겁니다. 또 피해자의 피해자들의 치유를 위한 시간이 길다고 해서, 가해자들을 위한 교육 시간을 교육의 목적과 효과를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들의 치유시간만큼 길게 늘일 수 있을까요? 아마 그렇다고 답변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피해자들의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면 아무리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치유와 상담을 받게 해야 합니다. 한편, 가해자들의 교육은 그들의 비행에 상응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학교폭력의 내용과 정도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교육시간을 늘여야 한다는 것은 교육효과와 처벌의 목적 면에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학교폭력은 다른 범죄와 달리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은 학교 학생으로서 익히 아는 사이라는 관계성, 계속해서 범죄가 일어나는 지속성, 다른 많은 아이들 앞에서 공공연히 일어나는 공연성이라는 고유한 특징을 갖고 있기에 그 처벌과 피해 복구에 이를 고려해야 합니다. 때문에 가해자에 대한 엄벌과 피해자에 대한 지원은 사법부뿐만 아니라 학교와 지방 교육청이 함께 그 제도와 시스템을 계속 만들어가야 하는 일이고요. 그러나 이것이 제대로 가능하려면 공동체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수입니다. 사건이 터졌을 때만 끓어오르다 이내 식어버리는 게 아니라 피해자의 아픔과 고통을 공동체가 언제나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가해자에게 가장 큰 압박이 될 것입니다.

 

 

3. 촉법소년 폐지에 대한 판사님의 견해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매체에서 이슈되는 사건을 보면 폐지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데, 더 깊이 보면 법이 존재하는 이유도 분명 있으니까요. 아이들이 자라는 환경 특히 부모의 양육태도가 늘 가슴이 아파요. 부모도 그들의 부모가 존재하고 부의 대물림처럼... 더불어 촉법소년 폐지의 대안으로 어떤 고민을 법조계에서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소년법을 폐지하지 말아야 할 많은 이유가 있지만, 소년법을 폐지하게 되면 청소년들에게 성인과 똑같은 수준의 법적 책임을 묻게 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가 미성년자에게 성인과 똑같은 책임을 물을 만큼 그들의 자유와 권리를 완벽하게 보장하고 있다면, 대답은 ‘예’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재산권과 참정권 등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고 의무교육을 시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형벌에 있어 성인과 동등한 취급을 하고자 한다면, 동시에 다른 모든 권리도 청소년에게 주어야합니다. 사회가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범죄의 잔혹성에 눈이 가려져 원칙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4. 소년에 대한 사회의 논의가 확장될 수 있도록 우리는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요? 그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소년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같은 편의점 절도라도 평범한 아이들이었다면 부모가 사과하고 보상하고 넘어갔을 일이, 가난과 가정해체, 학대 속에 방치된 아이들에겐 법정으로 넘어와 비행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계기가 됩니다. 그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를 골라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소년범의 죄는 소년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것이라는 사실을, 그 책임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지요.

 


5. 잘못을 반성하지 못하는 가해학생에게 해 줄 수 있는 단 한마디가 있다면 무얼까요?..실제로 그 아이들에게 판사님이 해주셨던(영향을 줬던) 말씀엔 어떤 말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아무리 엄하고 서릿발 같은 호통도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은 이에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 부모가 먼저 바뀌어야 하고, 죄를 돌아볼 엄혹한 교정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한 번의 만남, 한마디의 말로 삶이 바뀌기는 힘듭니다. 변화의 작은 희망을 붙잡고 쉼 없이 만나고 이야기하고 기도할 뿐입니다. 소년원에서 제 책을 읽은 아이가 소년원을 나와 사고무탁 신세가 되어 노숙하다가, 사흘을 굶고 밤새 걸어 저를 찾아온 일이 있었습니다. 배가 고팠지만 절도는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어려울 때 연락하거라.”,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는 제 말 때문입니다. 이렇게 평범하고 흔한 말이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올 때, 아이들은 그 말을 믿고 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