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관한 평가, 꼭 해야 할까요? -『소녀×몸 교과서』 윤정원·김민지 저자 | |||||
---|---|---|---|---|---|
타인의 시선으로 재단된 몸과 타인의 의견을 말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만들어 가는 몸과 목소리를 찾아 나갈 수 있기를, 그러면서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회복할 수 있는 탄력성을 기를 수 있기를 바라며 쓴 책이에요.
“가끔 월경을 건너뛸 때가 있는데 괜찮을까요?” “처음 성관계를 하면 질 주름이 찢어지나요?” “공중화장실 변기를 통해 성병이 옮기도 하나요?” “자위는 몸에 나쁜 건가요?” “가스라이팅이 정확히 무엇인가요?” 한 여성의 몸을 둘러싼 수많은 질문, 특히 신체와 감정의 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사춘기는 이 질문들에 관한 대답이 가장 절실한 시기다. 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와 김민지 여성주의 활동가는 같은 여성이자 전문가로서 이들의 목소리에 책임감 있게 답하고자 『소녀×몸 교과서』를 함께 썼다.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몸을, 우리 몸의 이름과 권리를, 서로 다른 몸의 다양성을,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제대로 알려 주기 위해 진료실과 학교 현장, 사회 한복판에서 수많은 여성 청소년과 마주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친근하고도 명쾌한 몸 이야기를 담아냈다.
두 분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이며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근무하면서 여러 부인과 환자들, 청소년, 성폭력 피해자, 성소수자 분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낙태죄 폐지 활동을 거치면서, 포괄적 성과재생산 건강/권리를 이야기하고 지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에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민지: ‘여성환경연대’라는 시민 단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몸’에 관심이 많습니다. 미디어에서 보여 주지 않는 몸 혹은 과도하게 보이는 몸, 조롱의 대상이 되거나 존중받지 못하는 몸, 상징성을 부여받은 몸, 거래 수단이 되는 몸 등에 관해 다양한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누려 합니다. 몸을 돌보는 법과 관계 맺는 법까지 포함해서요. 몸 인권에 관한 글을 쓰고 강의를 하고 시위를 하고 행사를 기획합니다.
1. 『소녀×몸 교과서』는 십 대 여성에게 들려주는 몸 이야기입니다. 평소 여성 청소년과 어떻게 만나 왔는지, 그리고 그때의 경험을 어떻게 이 책에 담았는지 들려주시겠어요?
윤정원: 산부인과 의사가 직업이다 보니, 진료실을 찾는 청소년들과 만날 기회가 계속 있었는데요. 성매개감염, 월경 위생, 원치 않은 임신, 성정체성 등 다양한 고민을 해결하려면, 결국 자기 몸에 대한 이해와 지식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자존감과 긍정심이 제일 중요하더라고요. 자연스레 성교육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지역사회 학교와 성문화 센터, 학부모 모임 등 소규모 성교육을 시작했습니다. 교육학을 전문으로 배우지는 않아서 당사자 직접 교육에 한계를 느꼈고, 현재는 성폭력 상담원 교육, 성교육자 양성 교육, 여성 단체 활동가 교육 등 교육하시는 분들이 몸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좀 더 정확히 알 수 있도록 돕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여성주의적 관점과 과학적이고 근거 중심적인 지식 모두 놓치지 않는 성교육 책에 대한 갈급함이 더 커지던 중에 마침 좋은 기회로 활동가 김민지 선생님과 같이 저술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2. 이 책은 실제로 의료 현장과 교육 현장에서 받아 온 질문과 이에 대한 답변을 최대한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담아내도록 구성했고,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콘텐츠나 홈페이지 자료들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김민지: 오랫동안 성교육과 성평등 교육을 해 오면서 수많은 십 대 여성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확실히 이전 세대보다 자기 몸에 관심도 많았고 알고 있는 정보도 많았어요. 그러나 그만큼 특정한 몸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더 많이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디지털 기반의 폭력도 훨씬 더 구체적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넘쳐나는 이야기들을 제대로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꼭 필요한 이야기는 더 자세히 하고, 잘못된 이야기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는 방식으로요.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몸과 좀 더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람을 이 책에 담았습니다.
3. 몸과 연관된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이 책의 구성은 ‘포괄적 성교육’이란 가이드라인에서 비롯했다고 알고 있어요. 포괄적 성교육이란 무엇인가요?
유네스코(UNESCO,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는 2009년부터 포괄적 성교육에 기반한 국제 성교육 가이드를 발간해 왔습니다. 포괄적 성교육 가이드라인은 어떤 내용이나 콘텐츠라기보다는 ‘목표와 지향’입니다. 무엇보다 성교육은 어느 한 시기에 일회성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생애 주기에 걸쳐 지속적으로 연령에 맞게 제공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젠더 평등과 인권, 다양성을 포함한 긍정적 가치들을 담아내고, 안전과 건강, 긍정적인 관계 맺기를 위한 태도와 스킬을 전함으로서 청소년들이 좀 더 충만하고 생산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역량 강화를 목표로 합니다. 피임 상식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게 왜 내 삶에서 필요한지를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실제로 내 행동은 변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가족이나 연인 등 친밀한 관계에서 행복을 느끼더라도 성적 학대나 폭력을 겪는다면/의료 기관에서 성적 지향으로 인해 차별을 당한다면/사회에서 할례를 강요당한다면, 온전한 삶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포괄적 성교육은 개인뿐만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요소에 대한 지속적인 토론을 장려하고, 무지와 낙인, 위험을 줄이기 위한 사회적 노력까지 포함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아하! 서울시립 청소년성문화센터’ 누리집 자료실의 ‘국제 성교육 가이드 2018 개정판 한글 번역본(지침서)’을 참고하세요.
http://www.ahacenter.kr/data/publication/30216
4. 그렇다면 이러한 성교육은 언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이 책을 권할 만한 연령대가 궁금해요.
사실 성교육은 나 또는 타인의 몸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그러니 넓은 범위에서 보자면 아기일 때 양육자와 꼭 껴안고 따스한 포옹을 하는 것, 더 자라서 누구와 목욕할지 정하는 것, 오랜만에 만난 친척과 어떤 방식으로 반가움을 표현할지 등이 모두 성교육의 범위 안에 들어가죠. 다만 모든 내용을 이 책에 담을 수는 없어서 대략 12~15세 정도의 청소년이 관심을 가지고 이해할 만한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꼭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되니까 초등학생이라도 관심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 페이지부터 먼저 읽어 보세요. 물론 청소년이 아닌 분들도 몸과 권리, 관계 맺기에 관해 실질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5. 이 책을 읽다 보면 내 몸에 대한 ‘선택’과 ‘권리’를 생각하게 돼요. 특히 여성 청소년에게는 현실적으로 이러한 선택과 권리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것 같은데, 우리 사회 속 여성 청소년의 건강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윤정원: ‘권리가 존재한다. 권리를 보장하라!’라는 구호만으로 권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한 법, 제도, 예산, 교육, 인식, 문화 등 여러 제반의 측면에서 실질적 보장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져야 가능할까 말까 할 텐데요. 제가 있는 의료 영역에서의 예를 들자면, 청소년이 병원 진료를 볼 때 부모 또는 보호자의 동의를 요구하는 의료 기관의 관행이 있어요. 보건의료기본법에 “나이‧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자신의 건강에 관한 권리를 침해받지 아니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민법상 행위능력이 있는 기준을 만 19세로 보고 있어요. 이런 이유로 미성년자와의 의료 계약이 무효화되거나 의료 분쟁 등의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회피하기 어려울 수 있어서 일선 의료 기관들에서 방어적으로 미성년자 진료를 거부하는 상황입니다. 피임 교육을 아무리 받아도, 피임 시술과 피임약은 급여 적용이 되지 않아 비용 부담이 높고, 의료 기관의 문턱 역시 존재합니다. 해외의 대다수 나라는 지역이나 학교의 보건 센터에서 익명으로 정신보건 상담, 피임 상담, 성매개감염 검사, 피임과 임신 중지를 위한 처방, 산전 검사 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히 청소년의 경우에는 무상으로 제공되는 곳도 많습니다. 이러한 서비스들이 가장 필요한 나이이면서 경제적 접근성은 가장 낮기 때문이죠. 임신과 출산을 중심으로 한 저출산 정책에서 모든 사람의 모든 생애 주기에서의 성/재생산 건강을 목표로 한 정책 전환이 시급합니다.
김민지: 청소년의 화장은 오롯이 개인의 선택 문제일까요? 청소년이라고 못 하게 하는 것은 부당하니 누구나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면 문제가 아닐까요? 다이어트는요? 그 시간에 공부나 하라면서 선택의 자유조차 박탈하는 건 문제이지만 ‘왜 이것을 욕망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질문 역시 사회적으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오늘 급식을 먹지 않겠다는 선택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왜 끼니를 거르면서까지 마른 몸을 희망하는가?’에 대한 분석이 필요한 거죠. 사회적 분위기에 기반해 개인이 취하게 된 선택을 마치 원인처럼 이야기하는 경우를 흔히 봐요. 운동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단련된 여성의 몸을 놀림감으로 소비해 왔으면서 “여자들은 원래 운동을 안 하던데?”라고 말하듯이요. 성별 고정관념과 성차별적인 문화는 여성 청소년의 행동을 제한하게 만들고, 몸에 대해 왜곡된 지식을 주입하죠. 그래서 실제로 건강에 악영향을 미칩니다. 개인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바뀌어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이러한 목소리를 내는데 이 책이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6. 저마다 내 몸을 돌보는 방식은 매우 다양할 텐데요. 두 분도 ‘건강하고 나다운 몸’을 위해 평소 일상에서 어떤 실천을 하시는지 공유해 주실 수 있을까요?
윤정원: 늘 환자들에게 운동을 강조하지만, 사실 저도 시간을 내기 어려울 때가 많아서 일상에서 사소한 습관을 바꾸려 해요. 이를테면 엘리베이터를 타는 대신 가능한 한 계단 오르기를 한다든지요. 급할 때는 일회용 생리대를 쓰기도 하지만 일상적으로 면생리대를 사용하고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마음 챙김 상담도 받고 있습니다. 음주는 당직이 아닌 주의 금요일 또는 토요일에만 한다는 원칙도 지키고 있고요(물론 엄청난 시행착오와 블랙아웃을 거쳐 정착된 습관이지만요). 개인적으로 자부심을 느끼는 한 가지 원칙은 파트너가 바뀔 때 산부인과/비뇨기과 검진을 꼭 함께 받는다는 거예요. 파트너와 몸과 성 이야기를 솔직히 나누게 되는 좋은 계기이자 파트너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는 기회이기도 해요. 검사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상대방이 같이 검사받는 것에 오픈되어 있는지, 결과에 대해 어떤 태도와 책임감을 보이는지 등을 볼 수 있죠.
김민지: 저는 사람들과 몸에 대한 평가를 하지 않으려고 매 순간 다짐해요. “살 빠졌네.” “어려 보이네.” 같은 말들을 칭찬으로 쓰지 않고, 누군가의 몸을 다른 몸과 비교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사실 종종 실패해요. 제가 그런 표현을 쓰지 않으려고 해도 다른 사람이 그런 식의 말을 걸 때 매번 정색하거나 못 들은 척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대화의 주제나 공기의 흐름을 바꾸려고 시도합니다. 우리 몸은 원래 다 다르고, 같은 사람의 몸도 건강 상태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화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어야 제 몸과도 잘 지낼 수 있는 것 같아요. 내 몸은 몸무게가 변하기도 하고 흰머리가 나거나 주름이 생기기도 해요. 주근깨가 말도 못 하게 많기도 하죠. 하지만 나의 몸과 남의 몸을 평가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예전보다 내 몸을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게 되었어요.
7. 마지막으로 『소녀×몸 교과서』를 읽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마디를 부탁드릴게요.
이 책은 모든 지식이 담긴 백과사전도, 어떤 길이 옳다고 이야기하는 잠언서도 아니에요. 시도를 주저하지 말기를, 아는 걸 안다고/모르는 걸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기를, 타인의 시선으로 재단된 몸과 타인의 의견을 말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만들어 가는 몸과 목소리를 찾아 나갈 수 있기를, 그러면서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회복할 수 있는 탄력성을 기를 수 있기를 바라며 쓴 책이에요. 이러한 힘과 용기를 발견해 나가는 데 이 책이 든든한 안내서가 되어 줄 수 있다면 좋겠네요. 사실 책을 다 쓰고 난 뒤 다시 읽으면서 ‘이건 내가 보기에도 꼰대 같아 보이는데…….’ 하고 자책한 부분들도 있었어요. 가르치려는 의도가 아니라 먼저 시도하고 실패해 본 사람으로서 여러분이 조금이나마 시행착오를 덜 겪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썼다고 이해해 주기를 바랄게요.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