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아이들의 색깔을 -『안녕? 나의 핑크 블루』윤정미 사진작가

출처_ 다움북클럽『오늘의 어린이책1』

인터뷰 및 정리_ 정진호(그림책 작가) 

 

화면 가득 똑같은 색이다. 같은 색 인형, 티셔츠, 공책, 신발, 책, 필통, 잠옷 사이로 똑같은 색을 맞춰 입은 물건의 주인이 카메라를 응시한다. 그리고 작가의 손가락이 움직인다. 찰칵. 15년간 젠더와 컬러코드를 주제로 사진 작업을 이어온 윤정미 작가의 작품이 《안녕? 나의 핑크 블루》라는 그림책으로 모습을 바꾸어 출간됐다. 다양한 이미지가 넘쳐나는 그림책 동네에서도 더욱 눈에 띄는 책이다. 새로운 시도, 낯선 형식, 묵직한 표현에 문득 작가가 궁금해졌다. 윤정미 작가의 연희동 작업실에서 만나 사진에 담은 의미와 그간의 작업 과정에 관해 편안하게 이야기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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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호 :

작가님의 여러 작업 중에서도 먼저 〈핑크&블루 프로젝트〉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최근 《안녕? 나의 핑크 블루》라는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고, 다움북클럽의 지향과도 가장 가까운 작업인데요. 〈핑크&블루 프로젝트〉는 젠더와 컬러코드를 담은 작업입니다. 처음 전시를 시작하신 2005년은 아직 한국에 페미니즘 담론이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던 때라고 생각되는데, 작업을 시작하신 이유나 계기가 궁금합니다.

 

윤정미 :

딸을 키우면서 시작된 작업입니다. 딸이 5살 무렵부터 핑크색을 무척 좋아하게 되었죠. 지인이 준 핑크색 원피스만 하염없이 입고 다녔습니다. 비단 딸뿐만이 아니에요. 주변의 여자아이들은 하나같이 핑크색 옷을 입는 게 눈에 들어왔어요. 그러다 뉴욕으로 유학 갔을 때, 큰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여자아이들의 물건들은 천편일률적으로 핑크색이더군요. 유대인, 중국인, 히스패닉계 등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는 미국에서도 성별 색깔 구분만은 매우 뚜렷하더라고요. 마침 새로 시작할 프로젝트를 고민하던 때였어요. 딸의 물건들을 보는데 옷뿐 아니라 장난감, 온갖 물건들이 모두 핑크색이었어요. 그래서 이 물건들을 모아서 늘어놓고 주인인 아이와 함께 사진을 찍으면 재밌겠다는 아이디어로 이어졌지요.

그렇게 처음에는 딸을 찍었고 점점 더 많은 아이들을 찍게 되었어요. 딸과 주변 아이들을 보면서 핑크색을 좋아하는 것이 과연 선천적인가, 상업적인 전략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미국은 텔레비전 광고가 15분에 한 번씩 나오고 끊임없이 같은 말을 반복하는 식인데, 그 광고를 보다가 어느새 아이가 ‘나 저거 사 줘’라고 말하는 걸 보면서 소비를 더욱 조장하는 미국 문화에 대해서도 짚어 보고 싶었어요. 이렇게 성별과 색깔, 소비 문화에 대한 생각을 〈핑크&블루 프로젝트〉에 담았지요.

 

 

정진호 :

〈핑크&블루 프로젝트〉는 여러 아이들을 찍는 동시에 한 아이의 성장 과정을 추적하며 촬영하기도 하셨는데요. 꽤 오랜 시간 동안 사진을 찍은 듯 보입니다. 인물이 성장하며 선호하는 색이 변화하기도 하고요. 마치 영화 〈보이후드〉를 보는 것처럼 인물의 성장과 변화가 사진을 통해 전해집니다. 이렇게 한 아이의 성장을 따라가며 작업한 의미와 과정이 궁금합니다.

 

윤정미 :

아이들은 성장하며 장난감이나 쓰는 물건이 금세 달라져요. 또 아이들 물건이나 옷은 오래 간직하지 못하고 버리거나 남에게 주기도 하고요. 그래서 사진으로라도 남기고 싶었지요. 연령대에 따라 선호하는 색이 변하다가 점점 자신만의 컬러를 찾아가는 모습도 재미있었어요. 촬영하면서 보니 3, 4학년이 되면 보통 핑크보다 보라색을 좋아하게 되고, 그다음에는 하늘색을 좋아하다가 그 이후로는 각자 좋아하는 색깔이 다양해지더라고요. 포니라는 말 인형을 만드는 회사에서는 말의 색깔을 핑크, 하늘, 보라색으로 출시해요. 그 외에도 여러 물건들이 보통 이 세 가지 색깔로 나오더군요.

 

 

정진호 :

아이들의 색깔 취향이 바뀌어 간다는 걸 조사해서 판단한 결과일까요?

 

윤정미 :

저도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아이들이 좋아하니까 그걸 노려서 만드는지, 그런 물건만 만드니까 아이들이 그 색을 좋아하는지. 책도 찾아보고 아는 디자이너에게 물어보기도 했어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물건은 핑크, 하늘, 보라색 외의 색깔로 만들면 잘 팔리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이와 관련해서 독일의 한 프로그램에서는 제 사진을 인용하면서 심리학자나 여러 전문가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사람마다 의견이 갈려서 하나의 정답을 내놓지 못하더라고요. 저한테도 아직 의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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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이야기는 책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다움북클럽이 고른 성평등 어린이·청소년책 『오늘의 어린이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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