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요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되었을까?』이상희 교수

 

오늘의 우리를 이해하려면 어제의 우리를 이해해야 하고,

오늘의 우리를 이해해야 내일의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나아갈지 생각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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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 교수 ⓒ Stan Lim

 

 

 

우리는 누구나 자신과 연결된 뿌리, 곧 ‘나는 누구인지’를 알고 싶어 한다. 그 궁금증은 “인간은 어떻게 인간이 되었을까?” “인간의 모습, 인간다움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라는 질문에까지 가닿는다. 이에 관한 답을 품은 학문이 바로 고인류학이다.

 

이상희 교수는 고인류학의 최전선에서 인류 기원을 탐구하는 세계적인 고인류학자다. 연구와 교육 활동 외에도 책과 강연 등을 통해 대중과 활발히 소통하며 인류 진화에 관한 발견들을 소개해 왔다. 그런 그가 머나먼 과거 인류를 거슬러 ‘인간다움’의 기원을 들여다보는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되었을까?』로 독자들을 새롭게 찾아왔다. 이 책은 최초 인류부터 현생 인류에까지 이르는 500만 년 인류 진화의 여정을 생생하게 재현해 내며, 우리 몸속에 남아 있는 고인류의 흔적과 인류 진화의 결정적 순간들을 되짚는다.

 

 

인류의 오랜 모험담에 빠져들다 보면, 수백만 년을 뛰어넘어 도착한 이 이야기가 동떨어진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의 ‘우리’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Q. 고(古)인류학자와 인류학자의 차이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많을 텐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시는지 소개해 주세요. 

 

우리가 속한 종인 호모 사피엔스의 기원과 진화를 연구합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적어도 500만 년 역사를 가진 인류 계통에서 지금까지 남은 유일한 종입니다. 현재 살아 있는 계통 가운데 인간과 가장 가까운 계통인 침팬지와의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시점이 우리의 기원이고요. 그 뒤 적어도 수백만 년이 흐르면서 여러 인류 계통이 나타나고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나타나고 사라져 간 수많은 인류 계통의 진화 역사를 알아내고, 그들 간의 관계(누가 누구와 가까운가)를 연구하는 학문이 고인류학입니다. 

종의 기원과 진화를 연구한다는 점에서는 생물학에 속하는 고생물학과 가깝지만, 우리 스스로를 연구하는 근본적인 특징이 있기에, 그리고 인류 진화에서는 생물과 문화를 떼 놓을 수 없기에 인류학에 속합니다. 사실 고인류학이 인류학이냐 생물학이냐의 문제는 단순히 학과 이름의 문제가 아니라 학문의 역사, 계보 그리고 정체성과 연결되는 복잡하고 재미있는 주제인데 다른 기회에 좀 더 길게 이야기하겠습니다.

 

 

Q. ‘인류의 진화’ 하면, 구부정한 자세에 털이 무성한 유인원에서 점차 허리와 어깨를 펴고 매끄러운 피부를 가진 인간의 모습이 되어 가는 단계별 그림을 흔히 떠올려요. 그런데 이 그림이 틀렸다고요?

 

‘진화’가 어떤 목표를 향해 점점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상식입니다. 진화사 초기의 인류는 작은 몸집에 두 발 걷기와 나무 타기를 모두 할 수 있는 적응 양식을 가졌고, 그 뒤에 몸집이 커지고 털도 잃었습니다. 하지만 최초 모습과 현재 모습 사이의 여정이 목표를 향한 행진처럼 일렬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다양한 모습을 가진 고인류 계통이 다양한 삶을 살아냈고요. 그들 중 하나만 ‘정통 조상’이고 ‘정통 후손’인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당당한 후손이자 조상입니다.

 

 

Q. 언젠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눈에 보이는 것을 공부하는 고고인류학에서 여자가 눈에 보이지 않게 된 이유가 궁금해졌다고 하셨어요. 훨씬 더 ‘다양한’ 고인류의 얼굴과 세계를 크게 그려 보려면, 기존 연구에서 변두리로 밀려나거나 지워진 존재들을 끌어오는 작업이 매우 중요해 보입니다. 최근 고인류학계에서는 이런 연구가 예전보다 늘어나고 있을까요?

 

확실히 그렇습니다. 계속 발견되는 고인류의 다양성, 고인류학 연구 주제의 다양성은 고인류학계의 다양성과 연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여성 연구자가 늘어나고 자리를 잡고 목소리를 내면서 고인류학의 남성 편향성이 드러나고, 비유럽 연구자가 늘어나면서 고인류학의 유럽 중심주의가 지목되고, 소수 민족 연구자가 늘어나면서 소수 민족의 인골이 자료가 된 과정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자들을 적극적으로 키우고 초대하면 학계와 학문이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움직임을 “학문의 정치화”라면서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대부분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죠. 

 

 

Q. 최근까지도 새로운 고인류가 발견되고 있어요. 많은 학문이 그렇겠지만 고인류학 세계는 특히 더 새로운 발견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고인류학자로서 살아오시면서 강렬히 기억에 남은 어떤 ‘발견’이나 ‘순간’이 있을까요?

 

과학으로서의 고인류학에 관해 제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발견한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발견이 아니라 깨달음이겠지만요. 저는 문과생으로 본격적인 과학 훈련은 대학원 과정에서 받았습니다. 근대 학문으로 시작한 고인류학은 과학으로 자리매김하고 정체성을 세웠습니다. 과학적 사고가 주는 명쾌함, 분명함, 확률과 수치로 그려지는 또렷한 그림에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과학’은 사회와 동떨어진 진공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인류학에서 객관적이고 가치 중립적이지 않다는 발견, 또한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연구 주제, 연구자에 관한 평가 역시 사회·역사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한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Q. 우리도 언젠가 ‘고인류’로 명명될 날이 올까요? 선생님께서는 과거 인류가 변화해 온 모습을 연구하고 계신데요, 미래 인류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 갈까요?

 

당연히(?) 호모 사피엔스도 고인류가 되겠죠? 모든 종에게는 시작과 끝이 있으니까요. 멸종하거나 다른 종으로 분화하면 그 지점이 호모 사피엔스가 끝나는 지점입니다. 포스트 호모 사피엔스는 어떤 모습일까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계층 양극화가 계속되어서 서로 유전자도 교환하지 않게 되면 결국 두 종으로 분화하게 될까요? 또는 인터넷이라는 막강한 도구로 모두 연결되어 소통하면서 공동체를 이루게 될까요? 

 

 

Q. 앞서 답하셨듯이 인간도 변화와 멸종에서 벗어날 수 없을 텐데, 오늘날 인간으로 인해 ‘사라져 가는’ 다른 종들이 떠오릅니다. 코로나19, 기후위기, 생물다양성 위기… 이러한 시대에 우리 인간은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할까요?

 

코로나 19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에서는 록 다운을 했습니다. 모든 곳이 문을 닫고 사람들은 집에서 지냈어요. 지난 십수 년 동안 플라스틱과 일회용 용기 사용을 자제하고 재활용을 열심히 했지만, 그렇게 해서 이룬 몇 발자국의 진보는 순식간에 후퇴하고 말았죠. 한편으로는 하늘이 얼마나 맑아졌는지, 야생동물들이 얼마나 늘어났는지도 보았습니다. 다시 오프닝을 하면서 하늘은 금세 다시 오염 물질로 어두워지고 동물들도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코로나19의 경험은 인간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그리고 역설적으로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알려 줍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구를 살리거나 죽이거나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만큼 인간이 막강하지 않아요. 하지만 다른 인간과 다른 생물체, 무생물체 들과 어떻게 하면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생각하고 행동에 옮기는 일은 소중합니다. 그 일을 포기하면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를 그리면서 준비하는 것은 지극히 인간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Q. 앞으로 어떤 연구를 하고 싶으신지 또는 어떤 이야기로 대중과 소통하고 싶으신가요?

 

인류는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인류학도 진화하고 있어요. 둘 다 역동적이고 계속 변화하고 있기에 앞으로 할 이야기는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시간 속에서 살고 있어요. (아직은) 누구도 한 방향으로 가는 시간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오늘의 우리는 어제의 우리와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거죠. 오늘의 우리를 이해하려면 어제의 우리를 이해해야 하고, 오늘의 우리를 이해해야 내일의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나아갈지 생각할 수 있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내일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적인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