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하지만 배려심도 있는 고양이가 있다면? - 『백 번 산 고양이 백꼬선생 1』 정연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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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들의 말 못 할 고민이 우연한 기회에 마법의 세계와 연결된다면? 

그리고 그 마법이 사라진 후에도 멋진 만남 덕분에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의지가 생긴다면?

산문과 운문 모든 장르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저변을 넓혀 온 정연철 작가의 재미난 상상이 마법의 세계를 현실로 끌어왔다. 『백 번 산 고양이 백꼬선생』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22년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선정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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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번 산 고양이 백꼬선생 1』을 읽으면서 정말 많이 웃었습니다. 정말 깨알 같은 재미가 곳곳에 가득하던데요. 이 책을 구상하시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더불어 인상 깊은 작가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대개 그렇듯이 저 또한 마법에 대한 환상이 있었어요. 어린 시절 TV로 만화나 명절 특선 영화를 보면서 마법의 세계에 순식간에 매료되었어요. 투명 인간이 되거나 슈퍼맨처럼 하늘을 날고 힘도 세지고 싶었어요. 동식물의 마음을 읽거나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세상에 숨겨진 비밀을 알아내고 싶었어요. 마법은 정말 신나는 상상이고 불가능은 없으니까요. 마법에 대한 동화를 쓰면 대리 만족을 느끼게 해줄 것 같았어요. 고민 끝에 마법을 실현할 동물로 고양이를 골랐어요. 고양이 이야기가 포화 상태지만 고양이만큼 마법과 잘 어울리는 동물을 찾지 못했거든요. 마법으로 어린이 친구들의 삶에 위로를 건네고 싶었어요. 살다가 맞닥뜨리게 되는 이런저런 고민을 스스로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마법이 사라져도 이야기가 가진 힘을 통해 마음의 근육이 더 단단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백꼬선생이라는 캐릭터를 만드실 때 가장 중점을 두신 부분은 어떤 부분인가요? 그리고 정작 책을 세상에 내놓고 보니, 백꼬선생의 어떤 점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고양이 동화를 쓰자고 마음먹은 다음부터 고양이에 관한 책을 꽤 읽었어요. 틈나는 대로 관련 영화나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블로그 글도 읽었고요. 고양이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매력적이었어요. 사람들이 집사를 자처하는 이유를 좀 알겠더라고요. 도도하고 까칠하지만, 어느 정도 묘생을 살아 본 고양이로 설정한 건 백꼬선생의 역할 때문이었어요. 어린이들의 고민 해결에 조력자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삶의 지혜가 필요할 테니까요. 게다가 마법을 부릴 줄 알면 금상첨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백 번 산 고양이 백꼬선생의 삶은 녹록지 않았고 그로 인해 한껏 까칠해졌어요. 하지만 자신을 긍정하고 좀처럼 주눅 들지 않으며 매사에 당찬 모습을 보여줘요. 까칠하다는 건 예민하다는 거고, 예민하다는 건 세심하다는 거고, 세심하다는 건 섬세하다는 거잖아요. 그건 상대방의 감정을 섬세하게 헤아릴 줄 안다는 거고요. 이렇게 해서 까칠하지만 배려심도 있는 매력 만점 백꼬선생이 탄생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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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꼬선생의 그림책방이 등장하는 것을 보니 작가님은 왠지 그림책도 아주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한 권을 고르시기는 어렵겠지만, 정말 좋아하는 그림책 한 권과 그것을 고르신 이유도 말씀해 주시겠어요? 

저희 아이들이 그림책을 가까이하면서부터 저도 그 매혹적인 바다에 빠진 것 같아요. 아내가 취향대로 고른 그림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서 자연스럽게요. 그림책은 볼 때마다 의미가 달라지고 스펙트럼이 확장되고 그래서 온갖 다채로운 상상을 가능하게 했어요. 이 동화책 속에 제목을 살짝 바꾸어 언급한 그림책들을 모두 좋아하지만, 굳이 하나만 고르라면 안녕달 작가님 책을 고르고 싶어요. 다정한 그림체와 담백한 글이 묘하게 제 감정을 흔들어 놓거든요. 때로는 그림 속에 담긴 사소하지만 세밀한 사물 하나가 애틋함과 그리움을 불러와요. 제 안의 창작 욕구를 자극하기도 하고요. 아이가 봐도 어른이 봐도 둘이 함께 봐도 좋은 그림책이라고 생각해요.


저자의 말에 백꼬선생의 첫 단짝 친구라고 적혀 있는데, 혹시 어린 시절 백꼬선생을 호제보다 먼저 만나셨나요? 

제 기억 속 고양이 이미지는 장독대 위에 놓인 생선을 도둑질하거나 먹이를 뺏기지 않으려고 날카롭고 사납게 구는 모습이었어요. 캄캄한 밤에 울면 또 얼마나 소름 끼치게 무서웠는지 몰라요. 결코 호감이 가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몇 년 전 고양이 책을 읽게 되고 SNS에 올라오는 고양이 사진과 동영상을 보게 되면서 고양이에 대한 선입견이 조금씩 벗겨지는 느낌이었어요. 어느 순간 매력에 푹 빠졌고요.

요즘 어린이들의 삶은 정말 바빠요.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오해가 생기거나 억울한 일을 당해도 혼자 해결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기 일쑤예요. 마땅히 고민을 털어놓을 상대도 없고요. 그런 어린이들에게 백꼬선생이 친구가 되어 주면 좋겠다 싶었어요. 백꼬선생은 겪어 볼수록 괜찮은 친구더라고요. 언뜻 이기적으로 보이지만 유머 감각이 있고 의외로 마음이 따듯하고 속도 깊어요. 여러분들도 백꼬선생의 단짝 친구가 되길 바라요.


그동안 동화와 동시, 청소년소설 등 여러 방면에서 글을 써 오셨는데요. 이렇게 다방면으로 쓰시기는 참 어려울 것 같아요. 문학 소년이셨을 것 같은데, '초등학생 정연철'에 대해 좀 알려주시겠어요? 

소심하고 자존감 낮은 아이였어요. 그 시절, 시골 마을엔 보통 나이가 같은 아이들이 여럿인데 유독 저만은 혼자여서 외롭기도 했어요. 혼자 학교를 오가고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았어요. 자연스레 풀, 나무, 꽃, 곤충, 벌레, 새, 가축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어요.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들을 상상하곤 했어요. 

일기를 쓰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그걸로 학교에서 칭찬받고 상을 받았어요. 시골이라 시시때때로 농사일을 도와야 했는데 일하다 말고 딴짓하다 들켜 아버지한테 혼난 적도 많아요. 그래도 어쩔 수 없었어요. 일하는 것보다는 몰래 딴짓하고, 아주 가끔 꾀병을 부리거나 학교 숙제를 핑계로 땡땡이치는 게 훨씬 즐거운 일이었으니까요. 삶에 틈이 생기면 지금 여기가 아닌 내가 만든 다른 세계를 상상하곤 했어요. 어쨌든 그 이후로 글쓰기는 삶의 일부가 되었고요. 요즘도 매일 밥을 먹듯이 이야기나 시를 생각하거나 지으며 살아요. 


작가님이 생각하고 바라는 '줏대 있고 균형감 있는 건강한 어린이'란 어떤 어린이일까요? 작가님이 그동안 쓰신 주인공들을 소개해 주시면서 설명해주세요. 

제 첫 작품집인 『주병국 주방장』의 주인공 주병국은 엄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꿈을 굽히지 않아요. 자기의 삶에 주인공은 자신이라는 걸 아는 거죠. 『엄순대의 막중한 임무』 속 엄순대는 치매를 앓는 할머니를 위해 기꺼이 할머니를 챙기며 1인 다역을 능수능란하게 소화해 내는 어린이예요. 가족의 소중함이나 배려의 가치를 아는 거죠. 『박찬두 체험』 속의 박찬두는 아프고 바쁜 부모를 위해 어린 동생을 책임져야 하지만, 특유의 낙천성으로 꿋꿋하고 씩씩하고 여러 난관들을 잘 헤쳐 나가는 어린이예요. 자신의 삶을 긍정하기 때문이에요. 이런 건강한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과 함께 어깨동무하면서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갈 거라 확신해요. 


많은 어린이 독자들이 2권이 어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요. 2권도 나올 것 같은데, 2권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시리즈로는 처음 내놓은 작품인데 어린이들의 사랑까지 듬뿍 받는다면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2권은 지금 진행 중이고 빠르면 내년에 나올 예정이에요. 백꼬선생은 이별, 전학, 오해, 따돌림 때문에 생긴 문제로 깊이 갈등하다가 우연히 마법 주문을 외우는 또 다른 친구를 만나게 돼요. 그 친구는 백꼬선생과 힘을 합쳐 어렵사리 고민을 해결하고, 마음이 한 뼘 성장한 자신을 발견하게 돼요. 매직캣츠월드의 시스템은 조금씩 업그레이드가 되고, 공간적인 배경도 한층 넓어져요. 어쩌면 드넓은 바다와 갈매기와 파도와 귤빛 노을을 볼 수 있을지 몰라요.

 

아직 세상에 마법이 있다고 믿는다. 그 마법으로 인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다는 두근거림으로 글을 쓴다. - 정연철 작가